말해도 좋아요. 괜찮아요. 당신이 말해도 괜찮아요. (다들 제 말보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여기서 법문을 펼칠 준비가 안 됐어요. 지금은 정해진 주제가 없어요. 통, 할 말이 있나요? 아무 말이나 해보세요. 아! 당신이 말해야 돼요. 그를 끌어들여야겠어요. 그래요. 그는 항상 내 옆에 있어요. 참 좋네요. 아무 말이나 해보세요. (할 말이 없습니다. 소리도 안 들리고요) 마이크 있어요. 소리가 들릴 거예요. 당신 목소리는 충분히 커서 마이크가 필요 없잖아요. (종종 제 이야기는 너무 진지해서 재미가 없습니다) 괜찮아요. 진지한 얘기를 좋아할 수도 있죠. 보세요. 다들 여기 부처가 되려고 온 거잖아요. 누가 재미로 여기를 와요? 맞죠? (네) (아니요) 뭐라고요? 당신은 재미로 왔군요. 더 일찍 알았으면 여기를 놀이 공간으로 바꾸고 입장료를 받았을 텐데요. 일인당 5달러면 충분하죠.
(영적 수행의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함정들에 대해 조금 말해보겠습니다)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잘 들으세요. 분명 극도로 심각한 얘기일 거예요. 일단 먼저 좀 웃고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곧 재미있지 않을 테니까요. 좋아요. (영적 수행을 하다 보면 어떤 함정에 빠지는 건 거의 피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그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시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죠. 보통 영적 수행을 할 때 많은 사람이 처음엔 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여기에 오거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스승님께 배우거나 단체에서 공부를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 사람들은 확실히 아주 빠르게 진보하고 그래서 많은… 예를 들면 좋은 체험을 많이 하거나 자신이 이전보다 더… 많은 지혜나 힘을 얻게 됐다고 느끼게 되죠. 그러다 보면 말도 아주 유창해지고 여러 면에서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 단계에서 많은 위험한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죠. 제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또 출가자든 재가자든 우리 동료 입문자들을 여럿 지켜보면서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참고하시라고 이런 예들을 말씀드립니다) 그렇군요. (우리가 이곳에 있을 때…) 개인의 체험을 비판하면 안 돼요. 그걸 의심하면 안 돼요.
(우리가 좋은 체험을 하거나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할 때, 그때가 보통 우리 중 대다수가 가장 쉽게 방심하는 순간이죠. 바로 그때, 수행에 덜 정진하거나 덜 경각심을 갖거나 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때 가장 잘 드러나죠. 그 순간에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뭔가 잘못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죠. 그래서 가끔은 저도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그런 느낌들을 많이 받습니다. 즉, 우리가 인간으로서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안에 깨달을 점이 있다는 거죠. 저는 이것도 불보살님들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우리가 실수를 한 뒤에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건 즉, 불보살님들께서 「우리가 전혀 특별할 게 없다」는 깨달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거죠. 이것이 가장 첫 번째 교훈인 것 같습니다. 흔히, 수행 과정에서 어떤 경지에 이르면 교만함이 생기게 됩니다. 또는 좋은 체험을 하면 그렇게 되는 걸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장애를 만나게 되죠.
두 번째로는, 우리가 실수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동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전에 스스로 실수를 해보지 않았을 때는 그런 잠재적인 함정들을 알아차리지 못하죠. 직접 시험을 당해보지 않고서 다른 사람들이 실수하는 걸 볼 때면 조금은 그들을 업신여길 수 있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들이 실수하는 걸 보고 마치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 같죠. 하지만 자신이 실수해 보면 그제서야 이해하게 됩니다. 영적 수행 과정에서 오는 시험은 정말 미묘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시험이 있을 수 있죠. 우리는 즉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만약 나였다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구경꾼처럼 서서 사람들을 보고 웃지만 말고요. 그래서 저는 느끼길…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두 번째 교훈은, 누군가가 실수를 했을 때…) 남의 일일 때는 항상 그렇죠. 됐어요. 그럼 재미있죠. 우리 둘이 재미로 같이 연기하는 거예요. 내가 말은 못해도 박수는 칠 수 있어요.
(둘째, 우리가 직접 실수를 해봐야 업장을 만났을 때나 우리가 무지할 때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걸 막거나 저항하는 법을 전혀 모르니까요) 와! (그래서 우리가 직접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차후에 다른 사람들이 실수하는 걸 볼 때 동정심을 갖게 되겠죠. 물론 그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실수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연민을 갖게 되죠.
그리고 세 번째는, 저의 세 번째 깨달음, 제가 느낀 점은 누가 실수를 하면 아직 실수하지 않은 우리에게도 경고가 된다는 겁니다. 분명한 메시지가 전달되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죠. 다른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행동에 더 경각심을 갖게 되고, 그런 행동이나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죠. 주의 깊게 관찰하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자신과 많은 동료 입문자들도 종종 어떤 경지에 이르면 사람들의 칭찬에 곧바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오늘 스승님이 말씀하신 예처럼요. 원래, 그 동료 입문자, 스승님을 위해 요리하던 한 입문자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겸손함을 스승님께서 칭찬하셨죠.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의 『독』(칭찬)을 받고 돌아온 뒤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죠.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아주 겸손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아주 빠르게 진보했죠. 정말 빠르게 성장했는데 그가 일정 경지에 이르자 사람들이 그에게 『독』(칭찬)을 줬고, 그 자신도 정말 힘과 지혜가 생겼다고 느꼈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교만함이 생겼죠. 그런 뒤에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을 보고 웃는 게 아녜요. 가끔씩 좀 웃어야지 아니면 다들 울 거예요. 당신도 포함해서요. (그럼 농담을 하나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계속 진지한 얘기를 하세요. 그건 흔치 않으니까요.
(또, 일본에 있었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어느 날 스승님께서 제게 『요 며칠 더 좋아 보이네요』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렇게 답했죠. 『아마 요즘 더 많이 참회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자 스승님이 말씀하셨죠. 『참회가 정말 효과가 있나요? 밖에는 참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산과 강으로 순례를 다니죠. 티베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순례에 바치기도 해요. 마치 살아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요. 단지 참회하기 위해 순례를 하죠. 하지만 그들이 해탈했나요?』 스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전 멍해졌습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 곧바로 이어서 말씀하셨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깨달은 스승을 찾지 못하고, 스승의 힘을 얻어 그분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참회해도 소용없어요. 그게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부처님께 절하고 매일 많은 참회 의식을 하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해탈해서 사라졌어야 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중생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 힘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완전히 헛된 거죠』 그날도 스승님은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아주 운이 좋은 거예요. 이 시대에 깨달은 스승을 만나 수행법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저는 며칠 전에 밀라레파의 책을 완독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체험이나 깨달음이 별로 없었는데 두 번째로 읽으니까 훨씬 더 깊은…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다. 밀라레파 시대에 그는 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죠. 그의 구도 과정의 여러 단계에 대해… 잠깐 다시 간단히 정리해볼게요. 예를 들어, 그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집을 짓는 과정이죠. 그가 처음으로 스승에게 예를 올리고 입문을 받으러 갔을 때, 그의 스승은…) 그것도 미래에는 유명해질 거예요. 집 짓는 걸로 부처가 될 수 있다면 그가 일등이겠죠.
(그가 처음 집을 지을 때, 절반 정도 지었을 때 그의 스승이 갑자기 말했죠. 『미안한데, 내가 장소를 잘못 골랐다. 부지를 고를 때 자세히 보지 않았구나. 그러니 이 돌들을 처음에 있던 자리로 다시 옮겨 놓고 이 흙도 파낸 곳에 다시 메꿔 놓아라』 그게 첫 번째였고요. 두 번째에는 다른 장소를 골랐어요. 밀라레파가 스승에게 말했죠. 『스승님, 제대로 된 자리를 골라 주세요. 다시 하게 하지 마시고요』 스승이 자리를 골랐지만 이번에도 또 절반 정도 됐을 때 허물고 다른 곳에 지으라고 했죠. 이번에는 밀라레파가 투덜대며 말했죠…) 술에 취했었죠. (그가 말했죠. 『왜 또 잘못된 자리를 골라서 제가 또다시 짓게 하시나요?』 그러자 스승은 자기가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했다고 말했어요. 그 후, 세 번째에도 절반쯤 지었을 때 또다시 허물라는 말을 들었죠) 그런 스승들이 있어요. 분명 술에 취한 거죠.
(세 번째에는, 스승이 모르는 척했어요. 『내가 언제 이곳에 집을 지으라고 했느냐? 허튼소리를 하는구나. 증인도 없지 않느냐. 증인이 있느냐?』 물론 밀라레파에게는 증인이 없었죠) 증인이 없죠. (그래서 네 번째에는 밀라레파가 스승의 부인이 동석해 주기를 요청했죠) (증인으로요) 증인으로요. (그런데 스승의 부인은 더 심하게 말했죠. 그녀가 말했죠. 『내가 여기 있어도 아무 소용없어요. 당신 스승은 그냥…) 믿을 수가 없다고요. (…믿을 수 없어요』) 그를 신뢰할 수 없다고요. (그러자 밀라레파가 말했죠. 『그래도 증인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습니다』 스승의 부인이 내켜 하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고 『그래도 증인이 있는 게 낫습니다』라고 했어요.
물론,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매우 재미있죠.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스승에 대한 밀라레파의 믿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죠. 만약 여러분이 그런 스승을 만났다면 확신하건대, 두 번째 시험에서 다들 달아났을 겁니다. 그런 스승 밑에 계속 남아있겠다는 그런 믿음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어요? 언제는 취해서 그랬다고 하고, 또 다음에는…) 지리를 잘 몰랐다고요. (증인이 없다고 하고요. 우리가 말하는 수행자의 곧은 성품 같은 건 전혀 없었습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소위 체면이나 위엄 같은 것도 전혀 없었죠. 어느 순간에는 술에 취해 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자기가 한 말을 부정하고 심지어 그의 부인조차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스승을 어찌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좋네요. 좋아요. 여기에도 그런 스승이 있으면 참 좋겠네요.
(게다가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심지어 그의 스승은 흑마술로 사람들을 죽이라고까지 했죠. 다수의 인근 마을 주민을 우박으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보통 사람에겐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지만 밀라레파는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그 집을 짓기 위해 많은 고난을 겪었고 등에 상처도 났습니다. 스승의 아내가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리며 스승한테 말을 하러 갔지만 심하게 꾸중만 듣고 나왔죠. 그를 위로하는 대신 그의 스승은 그에게 여러분도 알다시피 마구를 주면서 말 주민들의 일을 하라고 시켰죠. 모든 말 주민은 그게 있다면서요. 등에 얹는 도구를 주며 다시 일을 하라고 시켰죠. 생각해 보세요. 스승님이 여러분에게 그런 걸 메라고 시키시면…)
사진: 『외진 곳의 하찮은 버섯에게도 신은 이처럼 기품을 선물하셨어요!』











